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보이아 가문 (문단 편집) == 분가 == 분가 사람들은 1946년 이후에도 국외추방을 당하지 않았다. 사보이아-아오스타 가문은 공화국 성립 이후 잠시 외국으로 망명했었으나 1948년 귀국했다.[* 4대 아이모네 공작이자 [[크로아티아]]의 마지막 군주였던 [[토미슬라브 2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홀로 지내다가 1948년에 사망했고, 부인 이리니와 외아들 아이모네는 스위스에서 지내다가 돌아옴][* 그런데 아오스타 공작 작위는 군주제가 폐지되고 명목상으로만 남은 이탈리아 국왕 자리와는 달리 1946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공식적으로도 현재 남아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사보이아-아오스타 가문은 인정하는 모양이다. 물론 단순히 이탈리아 공화국이 제헌 헌법을 통해 귀족 제도는 폐지했지만 1922년 [[로마 진군]] 이전에 수여된 귀족 칭호는 인정한 것과 관련이 있을수도 있다.] 사보이아-제노바 가문은 3대 공작과 2대 공작의 3남[* 아달베르토(1898 ~ 1982), 4대 공작인 형 필리베르토보다 먼저 사망해서 제노바 공작위를 세습하지 못했다.]은 이탈리아에서 사망해서 추방당하지는 않은 걸로 보이며, 4, 5대 공작은 외국에서 사망하긴 했지만 추방인지 자기 발로 이주한 건지는 불명. 그러다 사보이아-아오스타 공작가의 수장 아메데오(1943 ~ 2021)가 1983년 망명중이던 [[움베르토 2세]]가 죽자 움베르토 2세의 외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1937년생)를 제치고 왕위 계승권을 다시 제기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를 제치고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는 움베르토 2세의 허락 없이 수상 스키선수인 스위스인 평민 마리나 도리아(1935년생)와 결혼해서 귀천상혼으로 계승권을 상실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보이아 왕가 역시 다른 대다수의 유럽 왕가처럼 군주의 승인 없이 비왕족과 결혼할 경우 자동으로 계승권이 박탈되는 형태의 [[귀천상혼]] 배제 원칙을 시행하였다.] 참고로 나폴리 공(전 왕세자)은 위 문단들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논란이 꽤 많지만 5대 아오스타 공은 1번 이혼한 경력이 있고 사생아[* 지네브라 마리아 가브리엘라. 2006년생이고 다운 증후군이 있다.]가 1명 있는 문제 외에는 나폴리 공에 비해 훨씬 정상적인 행보를 보였고, 9살 때 추방당해서 50여년 뒤에나 돌아온 나폴리 공과 다르게 5살 이후로 계속 이탈리아 본토에서 거주했으며 해군 장교로 군복무까지 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왕당파들 중에는 아오스타 공을 지지하는 세력이 상당수였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는 아오스타 공 지지파 세력도 약해진 상황이다.[* 하필 6대 아오스타 공작 아이모네는 2013년부터 [[피렐리]] 타이어의 러시아 지부 부사장을 역임하고 있는데 주요 공장이 [[보로네시]]와 [[돈바스]] 지역에 있어서 러시아에 별 다른 소리를 못하기 때문. 심지어 아이모네는 [[모스크바]] 거주 경력만 수 년이 넘어가는데다가 2018년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훈장까지 받은 골수 [[친러]]이다.] * 사보이아-제노바 공작가 - [[카를로 알베르토]]의 차남이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동생 페르디난도(1822 ~ 1855) 왕자를 시조로 하여 5대 165년(1831~1996) 동안 지속되었다. 사실 댓수만 5대지 조부-아들-손자들로만 3세대까지만 물려받았을 뿐인데, 3세대 손자들이 후사는 없지만 워낙 장수해서 1996년까지 버텼다. * 페르디난도(1822 ~ 1855) - 1대 공작[* 부인은 [[요한(작센)|작센 국왕 요한]]의 차녀 엘리자베트로 [[조피 프리데리케|조피 대공비]]의 외조카(어머니 아말리가 조피 대공비의 친언니)다. 또한 [[프란츠 요제프 1세]], [[막시밀리아노 1세]],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로이히텐베르크의 조제핀|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비 요세피나]], [[로이히텐베르크의 아멜리|브라질의 황후 아멜리]], [[오귀스트 드 보아르네|로이히텐베르크 공작 오귀스트]]의 이종사촌이다.] * 토마소(1854 ~ 1931) - 2대 공작. [[움베르토 1세]]의 사촌 겸 처남[* 움베르토 1세의 왕비 마르게리타가 토마소의 누나이다.] * 페르디난도 (1884 ~ 1963) - 3대 공작 * 필리베르토 (1895 ~ 1990) - 4대 공작. 스위스에서 사망 * 에우제니오 (1906 ~ 1996) - 5대 공작. 브라질에서 사망 가문의 수장이 될 수 있는 남계가 끊긴 것이지, 여계는 여전히 건재하다. 마지막 당주 에우제니오의 외동딸은 현재 살아있으며 4명의 자녀를 낳았다. 또한 제노바 공작가에서 [[움베르토 1세]]의 왕비를 배출하였으므로, 사보이아 본가 쪽 후손들은 모두 제노바 공작가의 여계후손이다.[* 또한 불가리아의 마지막 왕 [[시메온 2세]]의 어머니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딸이므로, 구 불가리아 왕가 후손들도 모두 제노바 공작가의 여계후손이 된다.] 그 외에는 2대 공작 토마소의 두 딸(마리아 보나, 마리아 아델라이데)의 후손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빌라프란카-수이손스 백작가[[https://en.wikipedia.org/wiki/Counts_of_Villafranca|#]] - [[카를로 알베르토]]의 증조부인 루이지 비토리오의 3남 에우제니오를 시조로 하여 1778년에 창설. 이후 1834년에 3대 백작 에우제니오 에마누엘레가 카를로 알베르토가 갖고 있던 카리냐노 공작위를 하사받았으나 1863년에 [[귀천상혼]]을 하였고 그 뒤 1888년에 [[움베르토 1세]]가 해당 결혼을 승인하면서 발라프란카-수이손스 백작위를 하사하여 에우제니오 에마누엘레의 아들인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부터는 빌라프란카-수이손스 백작위를 쓰게 되었으며 이후 3대째 지속되고 있다. * 사보이아-아오스타 공작가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차남 [[아마데오 1세|아메데오 왕자]]를 시조로 하여 1845년 창설. 6대째 지속되고 있다.[* 중간에 3대 아메데오가 딸 둘만 있고 아들이 없어서 동생 아이모네가 4대로 이어받은 형제 간 승계가 한 번 있었다.] * [[아마데오 1세|아메데오]] (1845 ~ 1890) - 1대 공작 *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1869 ~ 1931) - 2대 공작. 제1차 세계 대전 때 [[이탈리아 왕국군|이탈리아 왕국 육군]] 제3군 사령관으로 종군. * [[아메데오]] (1898 ~ 1942) - 3대 공작[* 부인은 자신의 이종사촌이자 6촌 동생인 오를레앙의 안([[루이필리프]]의 장남인 페르디낭 필리프의 차남 로베르의 손녀, 어머니 이자벨이 아메데오의 어머니 [[엘렌 도를레앙]]의 여동생이고, 아버지 기즈 공작 장은 엘렌의 친사촌이다), 장녀 마르게리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의 차남 로베르트와 결혼했다.][* 당숙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153 cm의 단신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아메데오는 198 cm의 장신이었는데, 이 때문에 생전에 종종 비교가 되곤 했다. 1937년 12월 21일부터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의 총독으로 재임하였고, 연합군이 에티오피아로 진군할 당시 투항하여 케냐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 병으로 사망하였다.][* 벨기에 국왕 [[알베르 2세(벨기에)|알베르 2세]]의 딸 [[벨기에의 아스트리드|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비 아스트리드]]가 장남의 이름을 이 사람에게서 따와 아메데오라고 지었다. 아스트리드의 남편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 로렌츠의 외조부가 바로 이 인물이기 때문.] * [[토미슬라브 2세|아이모네]] (1900 ~ 1948) - 4대 공작. 한때 [[크로아티아 독립국]]왕 [[토미슬라브 2세]]로 추대됨. [[아르헨티나]]에서 사망[* 부인은 [[그리스 왕국]]의 [[콘스탄티노스 1세]]의 차녀(다섯째) 이리니이다.] * 아메데오 (1943 ~ 2021) - 5대 공작[* 2번 결혼(이혼 후 재혼). 첫번째 부인은 [[부르봉 왕조#s-2.3|오를레앙 가문]] 출신이다.(아메데오의 큰어머니인 안의 조카이다. 또한 아메데오의 할머니 엘렌의 여동생인 이자벨의 손녀이기에 아메데오와는 6촌간이다.)] * 아이모네 (1967년생) - 6대 공작[* 부인은 [[그리스 왕국]] 미하일 왕자(콘스탄티노스 1세의 막내 남동생 크리스토포로스 왕자의 외아들)의 차녀 올가. 미하일 왕자는 6대 공작 아이모네의 할머니 이리니와 사촌이고, 미하일 왕자의 외가도 오를레앙 가문이기 때문에, 부부는 덴마크-그리스 왕가, 오를레앙 가문 기준으로 친척이 된다.([[요르요스 1세]] 기준으로 하면 7촌, 오를레앙 가문 수장이었던 기즈 공작 장 기준으로 하면 6촌이다. 참고로 미하일 왕자의 어머니 프랑수아즈는 상기한 3대 공작 아메데오의 부인 안의 언니다.)] * 움베르토 (2009년생) - 차기 계승자 * 아메데오 (2011년생) 현재 사보이아 가문의 종가와 사보이아-아오스타 공작가 간의 관계는 사보이아 가문의 계승 논쟁 때문에 매우 좋지 않다. 2004년 당시 스페인의 왕세자였던 [[펠리페 6세]]와 왕세자비였던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레티시아 왕비]]의 결혼식에 참석한 두 분가의 수장들이 서로 주먹다짐을 벌였을 정도.[* 첨언하자면 5대 아오스타 공작 아메데오는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후안 카를로스 1세]]의 6촌 동생(후안 카를로스 1세의 외할머니 루이즈 도를레앙이 아메데오의 할머니 [[엘렌 도를레앙]]의 여동생)이자 그의 왕비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소피아]]의 고종사촌 동생(아메데오의 어머니 이리니가 소피아의 고모)이다.] 이제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칭호일 뿐인데도 양측이 이렇게나 수장 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왕실의 후손으로서 1032년 사보이아 백국 시절부터 1946년 이탈리아 왕정 폐지 이전까지 천 년 가까이 쌓아놓았던 가문의 어마어마한 재산은 물론이고 지난 수백여년 간 왕실 명의로 수집한 예술품과 소유했던 궁전, 가문의 구성원들이 안치된 수도원이나 성당 같은 문화재들의 관광 수익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사보이아 가문의 조상들이 안치된 프랑스 사부아 생피에르드퀴르티유의 [[https://hautecombe.chemin-neuf.fr/|오트콩브 수도원]]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아 존재조차 모르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연간 150,000여 명이 방문했다. 오트콩브 수도원 같이 대중적이지 않은 장소만 해도 이정도인데 다른 명소들은 말할 것도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